오늘은 부활절이라서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기독교 신앙이 다른 종교와 특별히 다른 것이 있다면 바로 동정녀에 의한 탄생과 부활입니다.
과학적이며 합리적인 사고로 훈련받고 있는 현대인이 받아들이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이 부활의 문제는 기독교가 생긴 이래 2000년 동안 계속 이어지는 논란의 거리이고
앞으로도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아무리 쉽게 설명한다고 해도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리고 이해한다고 해도 쉽게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이기에..
그러기에 이 부분은 분명 믿음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일단 믿음으로 받아들여지기만 하면 그 다음부터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가 임합니다.
믿어지지 않으면 믿어질 때까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 부활의 문제가 일단 받아들여져야만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이 시작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해도 단지 종교적 열성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은 어떻게 이해되고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일까요?
부활은 말씀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게 되어있습니다.
부활은 성령께서 알려주실 때만 깨달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부활은 각자에게 주시는 은혜로 깨닫게 된 자의 삶의 모습이 변하는 데까지 나아가야만 의미가 있습니다.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게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곧 그시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보니
열 한 사도와 및 그와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는 지라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눅24:32-35)
부활은 죽은 다음에라야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내 삶 속에서 부단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육적 죽음 다음에 오는 것으로만 생각하여
오늘 주어진 삶을 팽개치고 다음 생만을 준비하려는 것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부활은 이미 다시 살아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청산하고 새로운 눈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눈이 띄여질 때 부활의 의미가 깨달아 집니다.
지금 내 삶의 자리가 아무리 화려하고 괜찮아 보인다 하더라도
기독교인인 이상 이 부활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면 아직은 아닙니다.
이 의미를 깨달은 자는 남은 자신의 여생 동안에 해야될 사명을 인식하게 됩니다.
이 사명을 깨달은 자라야 남은 인생에서 승리하는 요건을 갖추게 됩니다.
도저히 살아갈 힘이 없는 자에게 있어서 유일한 삶의 탈출구는
그 험난하고 고달픈 삶도 반드시 의미가 있고 할 일이 있다는 것,
즉 사명을 깨닫는 것에 있기에...
이 사명을 깨닫는 사람은 부활합니다.
반드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진 다음 염을 했다는 돌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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