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랑 하나님이랑

아빠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아!

장광호 2003. 8. 20. 13:59


어느 날인 가부터 은혜가 '아빠는 너무 모르는 게 많아'라고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대신 자기는 '아는 게 많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웃어넘기다가 계속 반복해서 그 말을 하기에 지금은 가만히 그 의미를 생각해봅니다.

어린 눈에 비치는 세상을 나름대로 표현하고 있는데, 제가 이를 읽어낼 재간이 없는 게 당연합니다.
은혜가 말하고자 하는 그 생각들을 바로 읽지 못하니까 '정말 아는 게 없는 아빠'로 보이는가 봅니다.

일례를 들면, 아직 글을 못 읽다보니까 세상에 있는 사물과 표지를 자신의 식대로 읽어 냅니다.

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 표지판을 보고 '들어가서 맛있는 것 사 먹으세요!'하는 표시라고 읽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도 그냥 휴게소를 지나칠 라고 하면 갑자기 '응가'가 마렵다고 합니다.

자주 고속도로를 오가는 동안 지혜를 나름대로 지혜를 터득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자신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아빠가 은근히 마음에 안 들겠지요?
그러니까 '아빠가 모르는 게 많은 것이 당연' 하겠다 싶습니다.

또 바깥으로 나가서 신나게 놀아줄 아빠가 필요한데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안 나가는 아빠가 자신의 마음을 모르는 게 맞잖아요?


오늘은 아침부터 갑자기 은혜가 '오빠' 노릇을 하겠다고 하면서,
저보고는 '처녀 동생'이라 하고, 제 아내를 그냥 '동생'이라고 부르면서 역할을 바꾸어 행동합니다.
처음에는 또 그냥 장난이라고 생각하다가 계속해서 하길래 '왜 그럴까'를 생각해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어서 은혜에게 이유를 물어봅니다.
'아빠를 왜 처녀동생이라고 부르니?'하고 물어보니까 은혜는 그냥 '그렇게 부르고 싶다'는 겁니다.

이 때 영적으로 더 깨어있는 아내가 중간에서 거들어 줍니다.

'아마도 당신이 이 세상에서 제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정이니까 한번 경험해보라는 것 같다'라고.

그러고 보니 사실 저는 이 두 가지 입장에 대해 지금까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남자이자 장남이다 보니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할 심정은 아마 처녀와 동생 심정일 겁니다.
의도적으로 이를 깊이 생각해보기 전까지는 이해하지 못할 심정이 맞습니다.

사람이란 대개가 자기가 경험한 세계를 통해서만 남을 이해한다고 보았을 때,
제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현저히 제한되는 것은 분명하네요.

그래서 오늘은 은혜가 내어준 이 숙제를 풀어보고자 합니다.
그런다고 해서 완전히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그 심정이 어떨지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어느 정도 경험했다하지만, 돌이켜 보면 정말 아는 게 별로 없는 저를 발견합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심정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안다면 무얼 알고 있는 걸까 생각해봅니다.
또 안다고 한 순간의 지식이 이미 죽은 과거의 지식이 된다면 아는 것이 별로 없는 게 당연합니다.

그래서 가끔은 역할 분담을 바꾸어 보고 생각해보는 것도 많은 은혜가 될 것 같습니다.

어느새 높은 자리에 가 교만해진 자신을 발견하고 어려웠던 시절을 돌아보는 지혜도 생기고,.
또 지금은 어렵지만 어느새 이를 극복하고 멋지게 일어선 자신을 그려보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도서 7:13-14)


* 입장을 바꿔놓고 잠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 있는 모든 분들을
축복하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