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갑자기 옆구리가 너무 아파 숨 쉴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어떻게 되겠다 싶고, 살고 싶어서 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관장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약간의 변비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어서 병원의 처방대로 관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참기가 어려워서 실패했습니다.(해본 사람은
압니다)
여전히 고통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면서, 그리고 와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통증이라는 것은 우리 육체 중 어딘가에 잘못되어 가는
부분과
이상이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 영혼도 분명 잘못 되어 가는 이상 증세가 있을 터이고,
그렇다면 그 때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를 놓고 계속 묵상했더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인생살이의 전반적인 과정에서 일어나는 고통들이
영적인 부분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는 아닐까 하고.
어떤 사람은 건강을 통해서
어떤 사람은 자식 문제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재산 문제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대인관계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부부관계를 통해서
어떤 사람은 상사와의 관계를
통해서
.
.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육체적인 이상은 그 정확한 진단에 따라
처방을 합니다.
감기에는 감기약을 먹어야지 설사약은 아무런 도움이 안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영혼에 문제가 생길
때에
처방 역시 영혼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영혼의 문제에 대한 처방은
하나님과의 관계 정립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닐까?
결국 이것은 회개와 직결되는
것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회개는 감사와 직결되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차원에서 아픈 중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상사 속에서 겪는 일들의 문제를
문제 그 자체로 보지말고 일단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찾아보는 것을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몸이 아프다면 무조건 먼저 약을 먹기 것보다는
갈등과 다툼이 있다면 그 사람과 먼저 다퉈
싸우기 보다는
먼저 하나님께 엎드려서 해답을 간구하는 것이 . . .
물론 인생살이의 모든 악과 고통의 문제를
다 그렇게
하나님과 연관시키고 회개와 연관시키는 것은
너무 심한 것 아니냐고 말할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런 점을 저도
인정합니다.
단지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나에게 일어나는 일상적인 일들과 사건 속에서
하나님과의 연관성을 찾아내는
바로 영적 민감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 저는 이러한 생각을 하고 나서 회개의 제목을 찾아
회개하고 났더니 정말 거짓말 같이 나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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