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야기들

고정관념을 진리로 믿고 있지는 않는지요?

장광호 2004. 1. 13. 19:49


며칠 전 진공청소기에 달린 손잡이 호스 일부가 찢어져서 불편하기에 서비스 받으러 갔었습니다.
찢어진 부분을 조금 잘라내고 새로 단단하게 연결을 시켜 주더군요.
집으로 돌아와서 연결시키고 그냥 두었다가 다음날 사용하려고 했더니 작동이 되질 않았습니다.

마침 토요일 오후엔 서비스를 하지 않아서 월요일 오전에 다시 가지고 갔습니다.
그런데 전날 고쳤던 담당 서비스 기사가 호스 내 전기장치가 고장났으니 새 것으로 구입하랍니다.

원래 고장이 난 게 아니고 줄을 새로 연결한 뒤부터 안 되는 것이니 다시 점검해달라고 했지요.
불편한 심기로 계기로 점검해보더니만 '잘하면 될 것 같기도 하다'며 잠시 나가서 기다리라고 하더군요.

한참을 지난 후 다시 불러서 갔더니 '다 고쳤다'고 하면서 고장 내용 설명을 해 주는데,
금요일에 고친 부분은 잘 고쳐졌지만 호스의 다른 쪽 부분이 고장나서 새로 고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 청소기는 그냥 호스만 가져오면 안 된다고 했지 않느냐'며 저를 나무라듯 말을 합니다.
또 자기는 같은 종류의 청소기를 가져오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습니다.
마치 말귀도 제대로 듣지 못하는 무식한 사람(?)처럼 몰아 부치는 것이었습니다.
저 스스로 느끼는 일시적인 기분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순간적으로 너무나도 황당하기도 했고 화가 났습니다.
언제 그런 이야기를 했냐고 따지면서 억울함을 풀고 나오려다가 그냥 꾹 참고 나왔습니다.

아마도 그 기사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 것을 제게도 한 걸로 착각한 것 같았습니다.
아니면 자신의 실수를 얼버무리기 위해 그렇게 만든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쨋든 자신의 고정관념 때문에 제 감정은 생각지도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저를 정죄한 셈이 되었지요.


이 일을 경험하면서 저는 이런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먼저 사람은 '자신의 입장과 지식과 경험 때문에 잘못하면 괜한 생사람을 잡겠구나'하는 것을 깨달았지요.

또한,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복음을 쉽게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너무 쉽게 정죄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저와 복음을 받은 우리 모두 역시, 한 때는 복음이 없었던 사람이었지요.
그러다 어느 날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 복되고 존귀한 존재가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니 누가 누구를 정죄하고 누가 누구보다 낫다고 자랑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내가 가진 복음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비록 남과 달라서 자랑할 만한 것일지 모르지만
언제 넘어질 지, 아니면 나중 되었다가 먼저 되는 자에게 추월당하게 될 지 알 수 없는 것이잖아요?


이런 생각들로 사로잡혀 있던 중, 어제는 마태복음 10:1-11:1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다들 잘 알다시피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고, 은 30을 받고 예수님을 판 자였잖아요?
그래서 제 고정관념 속엔 가롯 유다는 별다른 은사와 능력도 받지 못한 사람처럼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은혜를 별로 받지 못한 그런 사람이니까 예수님을 팔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성경을 보면 가롯 유다 역시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권능을 받았던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10:1)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가롯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10:2)

예수님께 직접 받은 권능이잖아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받은 자였다는 말입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가로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10:5-7)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가지지 말라..'(10:9-42)

예수님으로부터 능력과 함께 전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소양 교육까지도 철저히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처음엔 능력받은 자였던 그런 유다 조차도 사단이 들어감(요13:27)으로써 끝나버렸다는 말이 되잖아요?
그래서 '믿음의 시작도 중요하고, 능력도 중요하지만 마지막까지 가는 믿음'이 더 중요함을 알았습니다.


믿음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고 복된 지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그런데 이를 지켜내고 끝까지 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더더욱 잘 압니다.

처음에는 뭔가 세상을 바꿀 것처럼 열심히 하다가도 어느 샌 가 시험 들어 넘어지는 것을 보기 때문이거든요.
그런가하면 미적지근하던 사람이 어느 날 보면 상상도 못하는 엄청난 일을 해내는 걸 보곤 놀라잖아요?

하지만 어떤 경우에 처해있는 믿음의 사람이거나간에 겪어야하는 공통된 일 하나가 있다지요.

그것은 바로 우는 사자와 같이 덤비는 사단의 공격에 자유로운 자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목회자든 평신도든,
잘 믿는 자든 믿음이 연약한 자든 어느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의 고백은 가슴 속 깊이 다가옵니다.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6-7)



* 나도 모르게 형성된 고정 관념을 진리로 믿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모두 돌아보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