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야기들

순종이 어렵다고요?

장광호 2003. 12. 14. 22:07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한다는 것 다 압니다.
그래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믿음 때문에 얼마나 고민하고 애통해 할 때가 많은지 모릅니다.
믿는다고 자랑하면서도 믿음의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또한 더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끔씩 우리의 신앙생활이 흔들릴 때마다 성경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언제나 처음부터 점검하는 게 기본이듯 성경 속의 처음 시발점으로 돌아가야 하지요.
저는 나름대로 믿는 자가 처음으로 돌아가 점검할 때 '창세기 12:1-4절'로 찾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 . . . . . . . . .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75세였더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믿음의 조상 아브람이 순종했던 그 출발점이기에 믿음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지요.

아브람의 아버지가 우상을 만든 사람임을 감안한다면 그 역시 우상 만드는 일과 관계가 있었을 겁니다.
그 때 당시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보이는 우상을 섬기는 시대였다면,
보이는 우상을 만들던 그가 보이지 않는 신 여호와 하나님을 만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 것이 되지요.
정말 엄청난 결단입니다.

75세나 되는 늙은 아브람이 미련도 없이 그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의 순종은 과연 어떠한 순종이었을까?

우리 인간들이 어느 누구엔가 순종하려면 반드시 몇 가지 선행 조건과 결과가 있어야 하지요.

첫째는 언약한 당사자 자신과 그가 한 약속을 '철저히 믿을 때'에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 약속의 내용과 약속한 당사자에 대한 철저한 신뢰만이 사람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잖아요?.

둘째는 순종이란 그와 약속한 '말씀대로'만 하는 것입니다.
이행자의 뜻과 생각이 포함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문자가 요구하는 것대로 여야만 하지요.

셋째는 그 약속의 말씀대로 이행했을 때 반드시 선하고 유익한 결과가 있을 때 끝나는 것입니다.
일의 결과는 진실되고 선하고 유익한 것도 있지만 거짓되고 악하고 무익한 것일 때도 있지요.
그렇기에 우리가 한 일의 결과는 반드시 선하고 유익한 결과를 가져와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아브람이 좇아갔던 그 길은 철저한 순종의 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늙은 그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비젼으로 삼았던 것이지요.
불신이 못 떠나게 하고, 반신반의가 뒤돌아보게 만듦을 볼 때 앞만 보고간 그의 믿음은 확실했습니다.

아브람은 또한 말씀대로 좇아갔다고 했지요.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는 이미 다 이루어진 열매요 실상이지만,
인간의 눈으로 보면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약속과 희망과 소망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를 동일시하는 눈이 없을 때는 절대로 말씀대로 좇아갈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렇게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할 때는 꼭 요구되는 것 몇 가지가 있습니다.
기득권을 버리는 것, 가장 소중한 것을 버리는 것, 마지막 가진 것을 버리는 것이지요.
본토를 떠나는 것이 그렇고, 이삭을 바치는 것이 그렇고, 물이 넉넉한 곳을 버리는 것들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듯이 이것을 말씀대로 행해본 사람들은
'버림'으로서 '더 크고 새로운 것들로 얻고 거듭나게 만드는 하나님의 작업'이라는 걸 뒤늦게 알지요.

사실 순종이란 겉으로 보기에는 힘들고 어려운 것 같지만,
그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갖고, 즉각적으로 좇을 때는 곧바로 자유함과 평안을 주시기에 쉽습니다.

정말 엄청나게 어려운 일을 주시면서 순종하라고 하실 때가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 우리에게 너무나도 간단한 일을 주시면서 순종하기를 원하시지요.
그런데 그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음을 봅니다.
예를 들면 TV는 서너 시간씩 보면서도 성경 한 요절 못 읽는 것 같은 것들이지요.

아브람은 비록 그가 살아 생전에 그의 아내 사래의 몸에서 난 약속의 후손 이삭 한 명만 보고 죽지만,
400여 년이 지난 뒤엔 이스라엘 민족을, 수천 년 지난 뒤엔 수 십억이란 믿음의 후손이 생겼습니다.
지금 저와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그 후손이지요.
그의 순종함이 없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 지 모르겠습니다.


요즘 주야로 말씀을 읽으면서 크든 작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 순종하려고 애쓰는 자매님이
며칠 전 민수기 6:24-26말씀을 놓고 깊이 기도하는 동안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간증을 듣고 감사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한 말씀은 이런 일을 두고 한 말인 듯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성경으로도 그 분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을 주셨고,
또한 이 시간에도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늘 필요한 것들을 분명히 말씀해 주시지요.
그 분의 세밀한 음성을 듣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원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할 때 우리에게 어떤 열매가 맺힐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하나님만이 아시겠지요.


*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으니 우리는 말씀대로 사는 것만이 필요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