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야기들

눈에 안 보이는 부분을 보는 지혜!

장광호 2003. 6. 20. 13:05

가끔 메이저리그 야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합니다.
투수의 구속이나 질이 조금이라도 떨어질라치면 누구든 한방의 홈런으로 경기를 뒤엎어버립니다.
아무리 우수한 타자라도 가지고 있는 허점이 보이기만 하면 투수는 어느새 그 틈을 공략하지요.
한국에서는 최고의 실력이라도 여기에 가서 잘 되는 분명한 수준의 차이를 봅니다.

또 며칠 전 텔레비전에서 베링해의 게잡이 선에 대한 내용을 보았습니다.
최고로 질 좋고 맛있는 게가 잡히는 기간은 일년 중 며칠이 안되었습니다.
그게 언제 잡히느냐 하면 초속 30미터의 폭풍과 15미터의 파고가 일 때만 잡힌다는군요.
그런데 이 맛있는 게를 먹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과 바꾸는 그 어려움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들이 가는 길은 너무나도 다양해서 한마디로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공기가 희박하거나 아예 없는 저 높은 우주 공간을 다니면서 그들만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요.
죽음의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끊임없이 높은 산을 오르내릴 때 생의 의미를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친 파도와 싸우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평생 깨끗한 사무실에서 일하기도 하지요.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일에 전념하며 인생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같은 주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 맡은 각자 사역들이 너무나도 다릅니다.
각자 주신 사역에 합당한 그릇이 있고, 그 길을 가게하기 위한 하나님의 준비방법은 너무나도 다르지요.
또 그들을 가게 하심으로 인해 만들어내시는 사역의 결과도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기 쉬운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만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멋있는 일류호텔이라 하지만 그 건물의 뒤 한편에는 온갖 쓰레기와 추함이 쌓여 있습니다.
화려한 겉모습과 외양과 서비스 때문에 그 뒤에 숨겨져 있는 더러움과 아픔들이 안보일 뿐이지요.
높은 고층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지하 땅속에 묻혀 있는 파이프와 기초석은 전혀 안보입니다.

큰 믿음과 은사 뒤에 숨어있는 그 눈물의 기도와 삶은 대개 눈에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받은 복만 보이지 그 뒤에 숨겨져 있는 노력과 고난의 삶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이지요.
많은 신앙의 선배들은 그 길을 묵묵히 감당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의 진실이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지혜가 있어야 진정한 아름다움 뒤에 숨겨져 있는 그 피눈물나는 눈물어린 인고의 과정이 보입니다.
아름다움을 가장하고 있는 그 천박스러움과 허함과 속됨과 속임수를 분별하게 합니다.

주의 길을 가느라고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많은 일들을 겪어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믿지 못하는 부모형제 때문에 의절까지 당할 뻔한 고통도 견뎌냈습니다.
새 길 가는 친구에게 격려는 아니더라도 '목사는 다 사기꾼이야'라고 하는 친구의 조롱도 받았습니다.
벌 수 없어서 못 버는 게 아니고, 이 길을 가기에 어쩔 수 없이 겪는 경제적 고통 때문에도 어렵습니다.
때로는 은사 문제로 인해 일어나는 오해와 갈등 때문에 참으로 난감할 때도 있습니다.

아직까지 다 끝나지 않았습니다. 살아갈 날이 많습니다. 모든 것을 열매로 말합니다.
거친 파도와 폭풍이 몰아치는 큰 바다로 나가야만 맛있는 대어를 잡을 수 있다지요.
한라산 꼭대기에 올라가 봐야 한눈에 제주도를 다 볼 수 있는 시야가 확보되잖아요?
땅속 깊이 들어가 말없이 쳐 박혀서 떠 받히는 파이프와 기초 때문에 63빌딩이 세워졌지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견뎌내야 하는 시기이기에 입 다물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시기로 인한 형제살인이 인간의 최초 범죄인 것을 보면 사람은 애초 남을 사랑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사랑은 순종으로만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래서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명령이기에 순종할 뿐입니다.
내가 사랑할만한 사람만 사랑하고 미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은 결코 사랑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 속히 그 열매맺는 날이 오기를 소원하지만 다만 주님의 때에 이루어지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