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대계라고 하는 교육계가 일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단순히 NEIS나 CS의 문제가 아니라 기득권을 유지하느냐 빼앗느냐 하는 이권의 문제로 보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지도층의 쉼 없는 비위부조리와 조잡한 변명은 정직한 서민들을 낙담하게 만듭니다.
양심 없는 상류층의 무분별한 사치낭비는 없는 가정의 아이들을 참으로 억울한 심령으로 만듭니다.
과거 건전치 못한 가정과 사회가 만들어낸 억울한 희생자들인 부모들이 만들어 내는 수많은 이혼이
앞으로 우리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장래에 만들어낼 많은 문제들을 생각하면 참으로 답답합니다.
기존의 기득권 층은 너무 많은 것들을 독점하고 있음에도 대를 이어 계속 독점하려 버팅기고 있고,
지금까지 손해봤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손해보지 않겠다는 비장함으로 몸부림을 치고...
이렇게 날마다 쏟아지는 뉴스는 지금까지 존재하던 질서가 무너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아니 새로운 개념의 질서를 요구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서로의 입장을 들어보면 분명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질주만 해서는 아무 것도 안 남는 것이 불 보듯 뻔하잖아요?
이를 해결할 새로운 형태의 지혜가 분명히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역사를 보면 어느 한 순간 위기의 순간이 아니었든 적이 없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을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영원한 과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경 속에 있는 수많은 이야기 전체를 하나로 묶어서 표현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런 것이 될 것입니다.
절대절명의 위기순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과 '희망'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극복한 이야기들.
위기라 생각한 그 참담한 순간이 바로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신 시간이었음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16세기 루터를 통해 전해진 복음은 암울한 중세의 유럽과 세계의 역사를 다시 쓰도록 만들었습니다.
18세기 참으로 암담했던 영국 땅에 웨슬리를 통해 전해진 복음은 그 땅을 복받은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20세기 초 미국 땅에 시작된 영적 대각성 운동은 오늘의 강력한 미국이 있도록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이 일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공통점 하나는
당시 암울했던 그 나라와 그 시절에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
결코 그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그럼에도 부족한 '물질'들이 아니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병들어 있는 그들의 정신과 영혼을 치유시키기 위한 치료 백신이 '말씀'이었다는 것을 증거 합니다.
그것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그들의 삶에 희망을 주는 오직 복음의 메시지였던 것이지요.
병든 오늘 우리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회복시키는 것 역시 '복음'이라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오늘 이 나라 이 땅은 정말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이 필요한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복음이 이 땅에 선포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복음의 핵심은 너무나도 간단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들 이미 너무 너무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상처받은 이 땅의 한 영혼 영혼들에게 '누구든 먼저 다가가서 껴안아 주는 사랑'이지요.
모두들 상처받고 있기에 내가 먼저 다가갈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먼저 다가가서 껴안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만이 이 가정과 사회와 이 국가를 치유하고 변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실천의 문제'일 뿐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행함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 하루에 한 명씩이라도 먼저 껴안아서 이 땅을 치유, 변화시키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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