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군 동기생들 모임이 있었는데, 그곳에 가는 대신 어떤 한 분을 찾아갔습니다.
가서 보니 위로와 격려가 꼭 필요한 것을 알게 되었지요.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늘 '서로 문안하라'고 권유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그가 한 일에 대해 위로하고 있지요.
그가 사람들로부터 받았던 위로에 대해 얼마나 많이 감사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지금까지 형성된 관계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면 정말 살맛이 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그 관계가 무너지면 정말 어려워지지요..
요즘 한국은 바로 이 '관계'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뒤죽박죽 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우선 경제적으로 IMF 시대를 넘어서는 엄청난 어려움을 당하는 참 힘든 시절이지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오늘 열어보니 모두 그것이 빈깡통으로 변했고...
또 정치, 사회적으로도 너무나도 험난한 시대를 지나고 있지요.
어제의 상하 관계 등 기존 질서가 처절하게 허물어지기도 하고,
어느 것 하나 마지막까지 보장되는 것이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는 사람을 '죄인', '고물' 취급하니 마음붙일 곳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니 모두들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현장에서 버텨내는 것조차 힘들지요.
요즘이라서 꼭 그렇겠습니까?
우리 인생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요?
과거에 산 사람들이야 어떻든 요즘 우리의 삶이 더 어렵다고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일 것입니다..
이렇게 삶이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에겐 서로의 '위로'가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위로'라고 하는 한자를 살펴보면 재미가 있습니다.
'수고를 치사하여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는 뜻도 있고,
또 '괴로움, 슬픔을 잊도록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는 뜻도 있는데,
'고달픔을 풀도록 따뜻하게 대하여 준다' 는 의미가 되겠지요.
제 관심 부분은 '위로'라는 글자 중 바로 '수고로울, 일할, 위로할' '로'자입니다.
'위로'에 '로'자가 있다는 것은 위로하는데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직접 가든, 아니면 전화하든 먼저 찾아가고 함께 마주 앉아야 하는 수고!
가지고 있는 아픔과 슬픔과 고통과 어려움을 들어주는 수고!
그 아픔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아파하며 울어주는 수고!
또 그에 대한 해결책을 함께 찾아내고, 적절한 말로 평안하게 만들어주는 수고!
도울 힘이 된다면 기꺼이 내 것 까지 내어주는 수고!! 등등
이러한 수고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말하는게 아닐까요?
저도 한 때 너무 힘들던 시절 사람으로부터 너무 위로를 받지 못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로가 있어 견뎠지만, 사람의 적절한 위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이런 차원에서 본다면 이러한 위로는 결코 그냥 되는 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는 '위로'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서로 문안하라'고 한 바울의 말은 다른 말로 바꾸면,
'서로 사랑하라'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힘들고 지쳐서 진짜 위로 받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바로 누군가를 위로해 주라는 하나님의 신호로 받아들이면 어떨지?
* 가서 먼저 위로하면 사실 내가 더 많은 위로를 받고 오는 것을 체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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