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영성

떠나는 '아브람', 되어지는 '아브라함'

장광호 2003. 3. 8. 11:43

성경 창세기에 보면 '아브람'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이 나중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살던 고향을 떠나게 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렇습니다.

'너의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네가 가라고 하는 곳으로 가라.
그러면 내가 네게 복을 주어서 네 이름을 빛나게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또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겠다.
그리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게 될 것이다.'는 내용이지요.

그래서 아브람은 이 말씀을 좇아 그 아버지가 죽자 살았던 고향집을 떠납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 '데라'가 죽기 전에 하던 일은 우상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아브람이 그 고향을 떠나지 않았다면 아브람 역시 우상 만드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지금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 스스로 자신이 끊임없이 우상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은 스스로 자신만의 우상을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거나
아니면 그 영향력 아래 살고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어제 제가 군에서 전역 후에 현역 동기생들이 모이는 공식모임에 처음으로 참석했었습니다.
수명 모이는 소모임이었지만, 신학공부 관계로 거의 관계가 단절되어 있다가 4년만에 참석했습니다.
나름대로 이제 다시 옛사람들과 관계를 회복하는 시작이라는 의미도 부여해 보았습니다.

대화 모습들을 보면서 잘못했던 과거 제 모습을 발견하고 참으로 부끄러워 순간회개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하루 빨리 출애굽 하게 해 주신데 대해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이 아픈 것은 외형적으로 볼 때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출세한 사람들 같은데,
정작 제 갈 길을 찾지 못해 그 앞날에 대해 불안해하며 방황하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스스로 만들었거나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예속되어있는 그 우상의 영향력 아래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떠나지도 못하면서 주저하고 있는 '아브람'의 모습처럼 불안해 보였습니다.

누구나 지금까지 자신이 쌓아온 사회적인 경력, 목회 경력, 지식, 재물, 명예 등 그 사람의 가진 것이
오히려 그 사람의 발목을 잡고 늘어져 그를 떠나지도 못하게 만드는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그는 언제나 떠나지 못하는 '아브람'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끊임없이 매일 매일 떠나는 '아브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지금 몸담고 있는 그 곳을 버리고 떠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과 사고가 늘 그래야 한다는 것이고, 또 정말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실제 떠나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요즘 저 자신도 개척교회를 해가면서 생기는 노하우와 경험들 마저도
저의 발목을 잡는 우상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날마다 버리면서 떠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은 떠날 때 비로소 '아브라함'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가 75세에 떠났지만 실제 아브라함으로 이름이 바뀌는 것은 99세 때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참된 복을 받고 누릴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믿음으로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브람'의 결단과 순종, 그리고 끊임없는 인내와 오래 참음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 이 모임 뒤에 어느 전도사님을 만나 100만원의 교회개척 후원금을 받았습니다.
답답함을 느낀 모임 뒤에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이 있기에 참 감사함으로 이 길을 갑니다.


* 오늘부터 순종교회 성전을 구하는 과정을 카페에다 올릴려고 합니다.
http://cafe.daum.net/sjng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