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원수를 갚지 못하셨습니까?
살다보면 어쩔 수없이 생기는 대적들이 있습니다.
원수처럼 여겨지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혹시 원수가 있습니까?
원수는 갚으셨습니까?
아직도 못 갚으셨다고요?
그렇다면
억울해서 어떡합니까?
옛날부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원수갚는 일은 중요했습니다.
원수갚는 방식은 크게 두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고들 합니다.
원수를 원수로 갚는 방식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원수를 사랑으로 갚는 방식입니다.
이 두 방식은
지금까지 사용되어온 방식이면서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경쟁을 벌일 것입니다.
함무라비법전으로부터 나왔다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의 동태복수법은
서양이나 한국 등 여러 세계를 결코 멀지않은 중세까지도 지배해 왔습니다.
중세 서양에서는 상대 가문에 의해 죽은 시신은
상대가문에게 복수를 할 때까지 가족 묘실에 묻히지도 못한 채
집안 천정에 매달려 말라비틀어 갔다고 하지요.
그러다보니 상대를 똑같이 복수하는 것은
그 어느 도덕적인 의무보다도 신성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중종 때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그 딸이 몽둥이로 때려 죽였지만,
천리에 따른 것이라 하여 법적으로 유배형에 처할 사안임에도 특별히 사면한 것을 볼 때
직접 원수 갚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심정적으로 동의하고 관용했다 수 있습니다.
동태복수법을 시행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정의를 회복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이 죄짓는 것을 두려워하도록 하고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것이겠지요.
반면, 이와는 반대로 원수를 사랑으로 갚는 것 역시 강조되었습니다.
공자와 노자도 이러한 것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노자는 원수를 덕으로 갚으라고 했고,
공자는 제자들에게 원수를 바름(直)으로 갚으라고 했습니다.
어느 인디언 추장이 너무 목이 마르고 배가 고파서 백인마을에 들어가 물과 음식을 청했다가
매몰차게 거절당합니다.
3개월 후 깊은 산속으로 사냥갔다가 길을 잃고 쓰러져 있는 백인을 발견한 후
메고 돌아와 정성껏 간호해서 살려냅니다.
그 후 어쩔 줄 몰라하는 백인에게
"당신은 내게 물한 모금 안 주었지만 나는 당신을 살려주었다.
오늘에야 드디어 원수를 갚았다"고
이야기 했다 하는 것을 보면
인디언들에게도 원수를 사랑으로 갚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불교에서도 원수를 사랑하되 부모님처럼 섬기라고 설법한다고 합니다.
단순히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공경의 대상인 부모님과 동등하게 취급하라고요.
당연히 기독교에서도 원수를 사랑하되 목마르고 배고프면 마시우고 먹이라고 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놓으리라"
(롬12:12-21)
유교가 조선시대를 지배한 사상이었다면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 사랑으로 갚는 것 역시 우리들의 심령 속에 살아있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원수를 원수로 갚지 말고 사랑으로 갚는 것은 인류보편적인 사상인가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유사한 다른 가르침과 생각과 사상이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과 뭔가는 다른 것 하나쯤은 있을 듯 싶어서
성경을 들여다 보니 역시 다른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성경은 "원수를 갚지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맡기라"고 하는군요.
다시 말하면
'사람은 충분히 자신이 직접 행할 수 있는 선을 가지고 있으니
그 선을 가지고 원수를 갚으라'
고 하는 것과
'인간은 너무 연약한 인간이라서 할 수 없으니
원수갚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함으로 원수를 사랑하라'
고 하는 이것이
전혀 다른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과연 어느 것이 더 실천 가능한 일일까요?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불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갈5:16-18)
아직도 내가 이런 정도의 선을
충분히 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십니까?
아울러
도를 닦으면
이런 정도의 수준으로 충분히 용서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깊이
깊---이
물어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