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묵상 영성

대화는 입을 지키는 일입니다.

장광호 2005. 10. 15. 12:41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대화를 위해 막힌 담을 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풀어볼려고 하는 대화가 오히려 관계를 더 악화시킬 때 우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습니다.

대화를 포기하는 순간 그 관계는 단절이라고 하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어떠한 관계이든 대화는 열려져야 합니다.

과연 그 길을 어떻게 열어가야 하는 것일까요?

 

이 일에는 반드시 일정한 과정과 순서가 있다는 것울 알아야만 합니다.

 

먼저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하는 것이지요.

불신의 벽이 허물어져서 신뢰의 관계로 가야만 대화가 가능해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 불신은 상한 감정으로 포장되어 있기 때문에

이 감정의 문제를 먼저 풀어야만 신뢰가 회복된다는 것이 제일 큰 난관입니다.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불신하게 되었던 원인을 반드시 찾아내고 제거해야만 하지요.

이것 없이는 절대로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봐야할 겁니다.

 

둘째, 상대가 이 벽을 허물고자 하는 노력을 인정하는 것이지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만 노력하고 상대는 전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내가 엄청난 노력을 하는 만큼 상대방도 노력하고 있음을 인정해야만 대화가 가능하지요.

다만 내가 원하는 부분까지 도달하지 못하기에 내가 그의 노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대화가 되지 않을 때의 고통은 엄청나잖아요?

내가 고통을 받고 있는 만큼 상대도 똑같이 고통받고 있는 것이거든요.

 

그가 악한 사람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일말의 양심이 있을진대

하물며 사이가 벌어지기 전에는 분명 좋았던 사이에서는 더더욱 그런 것 아닐까요?

내 본심과는 전혀 달리 변하는 상황 때문에 더 많이 고통받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까지 가야겠지요?

 

셋째는 상대의 변화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있는 상대의 인격 그 자체를 용납하는 것입니다.

이번 만큼은 내가 원하는 수준까지 상대가 변해주어야만 내 마음을 열거라고 결심하지요.

 

하지만 이는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아직도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도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형성되어 온 습관과 부모로 물려 받은 성격 등은

내가 변하고 싶다고 해서 변해지는 것 같은 단순한 것이 아님을 철저히 이해해야만 하지요.

 

고통스럽긴 하지만 내가 수용해야만 되는 문제이고 또한 여기서 자유로워져야 할 문제입니다.

지금 내가 보기에는 도저히 용납하기 싫은 부분이지만...

내가 나의 있는 그대로를 용납받고 싶다면 상대방 또한 있는 그대로 용납받고 싶지 않을까요?

 

 

이 세가지가 병행되어야만 그 동안 막혀있던 대화의 길이 열립니다.

도저히 회복되지 않을 것 같이 소원해진 관계가 분명 회복됩니다.

 

그런데 사실 이 일은 행함의 길이기에 참으로 험난하고 어려운 길이지요.

행함에는 낮아짐과 희생이라고 하는 두가지의 어려움이 공존하기에 쉽지 않은 길입니다.

 

게다가 이 행함의 길을 따가려다보면 새로운 부딪힘 때문에 또 다른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아직도 안되는 것을 보니 포기해야 겠다는 생각과 함께

아직도 만족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그 인격 때문에...

 

하지만 그 때 할 일은 입을 지켜야만 한다는 겁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말들 때문에 입을 지켜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대화를 위해서 입을 지켜야 한다는 것 어쩌면 아이러니 아닌가요?

 

지금 이 땅에 대화의 길이 막혀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대화의 길이 열리게 되기를 소원해봅니다.

 

 

여호와여

내 잎 앞에 파숫군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