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사역 회복

비판과 용서가 만들어내는 각각의 열매

장광호 2003. 12. 7. 16:07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늘 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비판'하는 일입니다.
무엇인가 배울 수 있는 때가 될 때부터 비판하는 법을 배우지요.
특히 상급 학교로 진학할수록, 고등학문을 할수록 다양한 방법으로 비판하는 법을 배웁니다.

비판을 얼마만큼 잘 하느냐가 그 사람이 우수한가 아닌가 하는 평가의 기준이 됩니다.
이 끊임없는 비판 실력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을 높여 가지요.
배경지식이 튼튼해야 다양한 관점에서 비판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하기도 합니다.

건전한 비판을 통해 세상은 늘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유익한 것들 대부분 이러한 비판을 거쳐서 나온 것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비판은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참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우리에게 비판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지요.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눅6:37)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요?


먼저 이 비판하는 일에는 반드시 기본 전제가 필요하다고 보아집니다.
그 사람이 한 일에 대해 비판할 수 있지만 그 비판을 그 사람에게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한국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직도 비판하는 일에 서투르다고 합니다.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토론하는 일을 해보았지만 훈련이 덜 되어서 인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제가 발표한 내용에 대해 비판하는 것인데도, 저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습니다.
상대방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제 자신이 그렇게 느꼈을 뿐이지만 .........
이런 것들을 되돌아볼 때 일과 사람 자체를 분리하면서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언제나 일과 일하는 사람을 구별해서 생각하는 지혜를 가져야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언제나 죄와 죄인을 엄격히 달리 다루셨습니다.
사소한 죄조차도 사망이라는 중벌로 다스리지만, 죄인에 대해서는 긍휼히, 회개하는 자는 용서하시지요.
그러기에 천국은 회개한 엄청난 중죄인들이 가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일 자체를 비판하기보다는 인간 자체를 비판하기를 좋아하는가 봅니다.
성경에서 '하지 말라'고 한 것은 그만큼 많이 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라'라고 한 것을 볼 때...

경험상 비판 잘하는 사람 치고 자신이 비판당할 때 이를 잘 수용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 비판이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그가 가진 인격을 무시하는 일을 서슴치 않을 때가 많지요.
그런 그 스스로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피해를 주는 사람인지 조차 모를 때가 있고요.

피해 받은 사람은 그 아픔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이를 이겨내기 위해 견뎌야 하는 지 모릅니다.
이를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그 상처 때문에 목숨을 버리기까지 할 정도로 힘든 것이지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준 상처는 잊어버린 채 남에게 받은 상처만 기억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또 사람들은 비판할 때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기준을 갖다대는 지 모릅니다.
상대방에게는 철저하게 완벽한 인간이길 요구하면서,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보아주기를 원하지요


그러기에 예수님은 비판의 기준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아예 비판 자체를 하지말라 고 하셨습니다.
또 안타까운 것은 비판은 끊임없는 비판을 낳게 된다는 사실이지요.
그래서 예수님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판을 끝낼 결정적인 방법으로 '용서'를 제시하십니다.

세상적인 가르침은 언제나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법칙입니다.
젊은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드라마의 전개는 대부분 자기가 당한 만큼 언젠가는 갚아주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 결말은 언제나 되돌려 갚아주는 것을 통해서 끝나지 않음을 봅니다.

용서는 더 큰 자가 작은 자를 안는 것입니다.
용서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법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낸 사랑의 용서가 이 세상을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 놓으신 것이잖아요?

한 때의 토론과 싸움에서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서 그 사람에게 일단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사람은 언젠가 자신보다 더 잘 비판하는 새로운 비판자에 의해 결국 넘어지는 순간을 맞게 됩니다.

결국 비판은 비판하는 자와 비판받는 자 모두의 '죽음'이라는 열매를 만들어낼 뿐입니다.
용서는 용서하는 자와 용서받는 자 모두 함께 살기에 결국 모두가 다 사는 '생명'의 열매를 맺고요.
그렇다면 지금 내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나는 나 자신과 또한 생명을 살리고 있는 일이 됩니다.

우리 모두는 누구나 인간으로서 참된 대접을 받고 살아가고픈 존재들임을 생각할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 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용서이지만 지금은 분명 더 많고 큰 용서가 필요한 때인 것이 분명합니다.


* 이 글은 큰 아이가 누군가로부터 마음의 엄청난 상처를 받아 힘들어했을 때 설교했던 내용인데,
간단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상처받은 누군가의 심령에게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