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사역 회복

아, 죄 뿐인 너 인간(人間)아!

장광호 2003. 6. 12. 13:21

한동안 저 자신을 포함한 '인간' 자체에 대한 실망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 속 어디에 감춰져 있다가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정말 그 추악한 모습에 너무 실망합니다.
한 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반복되어 나타나는 그 모습에 몸서리쳐집니다.
계속되는 실망스런 모습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을 것만 깊은 좌절감으로 연결됨을 봅니다.

그래서 세상과의 연락을 잠시 뒤로 한 채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위해 성경만 묵상하고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다시 읽고 있으면서 한 구절 한 구절 깊이 가슴속에다 새기고 있습니다.
읽다가 목구멍에 걸리면 거기서 한동안 멈추고 소화가 되고 나면 다음으로 넘어갑니다.

한 절 한 절 안 걸리는 곳이 없을 정도로 많아 며칠째 창세기에 머물러 있습니다.
전에는 몇 시간만에 그냥 술술 잘도 넘어가던 곳이었는데....

창세기의 주역들로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참으로 실망스런 인간의 본 모습을 봅니다.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을 보면 실망스런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이지요
자신의 목숨을 위해 아내를 두 번이나 팔아먹는 겁쟁이 입니다.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었음에도 아내가 죽은 뒤 140세 쯤 되는 할아버지가 후처 '그두라'는 왜 두는지?

'순종의 사람'이라고 하는 이삭은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 아니랄까 봐 아내를 팔아먹습니다.
그리고 고기를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뇌물을 좋아하는 건지 얻어먹고는 에서를 계속 편애합니다.

'축복의 사람' 야곱은 형과 태 중에서 형과 싸우다 먼저 나오는 형의 발목을 잡고 나오지요.
배고픈 형에게서 팥죽 한 그릇으로 장자권을, 어머니와 짜고서는 축복권을 탈취합니다.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의 사자와 만나서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뀐 뒤에도 교묘한 속임수는 여전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본다고 아부한 야곱이 형의 복수를 무서워해 '세일'과는 정반대의 '숙곳'으로 갑니다.

카인, 롯과 그의 딸들, 기타 등등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의 추한 모습이 얼마나 적나라하게 나오는지..

이런 모습의 사람들이 우리 인간의 선조들입니다.
이러한 추악한 모습의 사람들을 하나님이 축복하고 있다는 부분을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에 걸립니다.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축복 받는 사람들인가 하는 것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을 제가 꼭 닮아 있다는데 참으로 큰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 모습에서 한발자국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과 주위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고요.

하지만 인간의 근본적인 모습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순간 큰 위로가 됩니다.

결국 이 문제는 인본주의적 시각이 아닌 신본주의적 시각이라야만 해결이 됩니다.
복받을 짓 한 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가 단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인간의 행위가 어떠하든 '약속하신 복'을 일방적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세상이 두렵고, 사람이 무서워서 짓는 그 죄를 불문하고...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이 그렇고, 이삭에게 주신 복이 그렇고, 야곱에게 주신 복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핵심내용은 사실 인본주의적 사고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 주시는 복 즉, '무조건적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내가 남들 보기에 좀더 거룩한 모습을 하고 있고, 더 능력 있으며,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 같고.
뭔가 남을 위해 선한 일을 하는 행위를 통해서 성자의 길에, 신적인 본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인간의 본성은 누구나 다 추악해서 결코 그 길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성경은 애초부터 우리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면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우리 인간은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내가 바로 그런 아브라함이고, 이삭이고, 야곱이라 하더라도
나를 그냥 사랑하시고 용서해주시고 복 주시는 하나님이기에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나와 같은 죄인인 그 인간들을 용서하고 용납하고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따라
힘들고 먼 길 이지만
나도 단지 묵묵히 따라갈 뿐입니다.


* 그 동안 개별적으로 연락을 못 드렸던 분들에게 이 글로 그 동안의 인사를 대신합니다.
기간 내에 새 성전을 구하지 못해 앞으로 일년동안 교단에 인정받지 못한 채 사역하는
순종교회와 제가 힘 잃지 않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