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야기들

시기와 질투

장광호 2003. 3. 29. 11:21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 최초의 죄는 물론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죄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사람에 대해 지은 최초의 죄를 말한다면
그것은 형 카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최초의 형제간의 살인일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에게 죄가 들어온 이후 제일 먼저 일어난 사건이 형제간의 살인 사건에 대해
성경은 분명하게 그 이유가 무엇인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시기'라는 단어는 '샘하여 미워함'이라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질투'라는 단어는 '강샘' 또는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고 증오하는 감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샘'은 '남의 일이나 물건을 탐내거나 자기보다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미워함 또 그 마음'이고요.

결국 이것을 한마디로 정리해본다면 '나보다 나은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이 동생의 제사를 더 기쁘게 받으시자 이를 시기한 카인이 결국 동생을 죽인 것이지요.

이런 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죄악의 처음 사건이라고 한다면,
지금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다른 사람보다 앞서야한다'고 가르치는 논리 속에는
언제나 이러한 죄를 계속 반복할 씨앗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성공을 강조하는 삶은 끊임없는 범죄를 양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성공하는 삶보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소위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이 존경받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이 성공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자신과의 힘든 싸움뿐만 아니라
그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었기 때문에
이것을 거친 성공은 마땅히 존경받아야 하고, 또 사람들은 그들의 성공을 축하해 주어야 합니다.

어찌 보면 성공한 사람들이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존경받지 못하는 것은 정말 부당하지요.

그러나 우리 한국 사회는 아직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경받지 못하는 사회입니다.
또한 성공한 사람들을 진정으로 축하해주지 못하는 사회이지요.
지금은 더군다나 누가 누구를 인정해야 하는 지 모르는 혼돈의 시대 그 자체이지요.

왜 그럴까? 그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지나온 우리의 아픈 과거 역사를 통해 소위 '성공한 사람들'을 볼 때
그 '성공'이라는 결과 뿐 아니라 그 과정과 수단에서 정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정당한 수단과 방법을 통한 성공의 사회가 어쩌면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한
영원히 이룩되지 못하는 이상적인 사회일 지도 모릅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한 언제나 이러한 현상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면.

그러나 결과 못지 않게 그 과정과 수단에서도 정당한 방법으로 노력한 사람이
성공하는 비율이 훨씬 더 높아지는 사회가 된다면 더 좋아진 사회라고 할 수 있겠지요.

여기서 '시기와 질투'가 나보다 나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때
우리는 나보다 나은 사람에게서 정말 옳은 것을 배우고 본받아야 합니다.

'시기' '질투' '미움'이라는 개념이 '사랑'이라는 개념과 반대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그 가르침의 기준이
지금의 자신을 점검하는 한 기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 지금 누구든지 미워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또 다른 하나의 '시기와 질투'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