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랑 하나님이랑
사랑둥이 큰 딸
장광호
2003. 2. 9. 09:08
이제 이 부분을 글로 쓸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은혜입니다.
제 큰딸이 고2가 됩니다.
한참 민감한 청소년기에 너무나도 많은 아픔을 겪고 자랐지요.
유달리 착하고 여리면서도 총명했던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부터
급박하게 닥치는 저의 전역과 신학공부 등의 갖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딸의 사춘기와 맞물리면서
정말 필설로 형용할 수 없는 험난한 길로만 다녔었습니다.
소위 '탈선 청소년'들이 하는 행동은 다하고 다니는 딸의 모습을 날마다 쳐다보면서
이러한 부분을 수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세상에 있는 부모 치고 공부 열심히 하면서 순탄하게 자라길 원치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 힘든 과정을 모두 겪으면서 '가정사역'을 앞으로 제가 감당해야할 사역으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제가 살아오면서 가지고 있던 가장 아팠던 물음 중의 하나이기도 했습니다.
비교적 평범하게 청소년 시절을 보낸 저와 제 아내에게,
그리고 앞으로 목회자의 길을 가려고 하는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날 때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왜 하필 우리 가정에 일어나는 것일까?"
그래서 얼마나 많은 낮과 밤을 지새면서 울었는지 모릅니다.
대화가 되지 않는 아이를 보면서 얼마나 많이 화를 냈는지도 모릅니다.
또 대화가 되지 않는 아빠를 보면서 딸은 꽉 막힌 가슴을 치면서 얼마나 답답해했는지 모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사람 막대기가 되어서 휘둘러질 때는 모두다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지도 않은 말들이 저절로 입에서 튀어나와 상대방을 아프게 하는 경험들을 하면서
얼마나 낙심이 되고 좌절이 되는지, 신학공부하는 동안 내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딸을 키우시고 크게 사용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으면서도
부모의 입장에서 속이 상해서 얼마나 많이 힘들어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요즘 남들이 할 수 없는 사역을 이미 하고 다닙니다.
어쩌면 이 땅의 이미 힘을 잃은 부모와 선생님들이 해결해 줄 수 없는 고민을 해결하고 다닙니다.
사실 같은 또래가 또래에게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단순합니다.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우는 것이잖아요?"
부모나 선생님이 사실 이것을 제대로 못합니다. 혼만 내고 야단만 칩니다.
사랑 자비 동정 연민이라고 하는 것의 공통점이 크게 우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 아이가 사실 공부보다 더 귀한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 아이가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친구로 관리하는 아이들이 제가 보기엔 2-300명 되는 것 같습니다.
참으로 아픈 친구들이 부모님, 선생님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24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몸이 지쳐서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아파하는 친구들의 일을 들으면 자신이 겪어왔던 그 아픔들이 있기 때문에
그냥 모른 채하고 넘어가지를 못합니다. 사정을 들어보면 말릴 수도 없고....
가출하려고 하는 아이들, 사고치려는 아이들을 얼마나 많이 가정으로 돌려보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것을 인정하기에 참으로 귀한 일을 한다고 인정하다가도
그러다보니 공부가 뒷전이 되는 이 아이를 보는 순간 부모의 입장에서 화가 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것이 제게는 또 다른 하나의 상처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아이가 한창 방황할 때는 몸에 손도 못대개 했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어제 밤에는 큰딸을 은혜 안듯 꼭 가슴에 안고 울면서 이런 내용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 딸을 건강하고 용감하고 씩씩하게 해 주시옵소서!
이 딸의 가슴에 맺혀 있는 상처들을 치유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버지인 저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으면 치유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엄마, 동생, 친척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다면 치유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선생님, 친구들로부터 받은 상처가 있다면 치유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제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면서 귀한 복음을 증거하는 딸 되게 해주세요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되게 해주세요!"
이 기도를 마치는 순간 제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 일을 겪으면서 몇 년 동안 가슴에 막혀있었던 무엇인가가 없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일들 통해 사실 저보다도 더 아팠던 것은 딸이었다는 것을 이제 온전히 이해합니다.
얼마나 힘들었기에 뛰쳐나갔고, 바깥을 헤매는 딸이 되었는지를 헤아리지 못해
더 위로하지 못하고, 더 안아주지 못하고, 혼만 냈던 제가 부족했던 것을
그리고 그 아이에게 있었던 그 일들이 자신도 어쩔 수 없었던 하나님의 커다란 은혜 안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 지금까지 그 엄청나게 힘든 과정들을 잘 이겨낸 딸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후원금의 일부가 이 아이의 활동비로 쓰였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더 많이 통화할 수 있도록 핸디폰 정액제 요금도 더 올려줘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