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야기들

'졸업생 환송식'을 마친 소감

장광호 2002. 12. 6. 10:45

 

참담한 심정과 설레는 마음이 교차한 가운데
목회신학대학원 입학시험을 치고, 합격통지서를 받고,
헬라어 수업을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가 '1999'라고 하는 숫자를 떼어내고
'2000'이라고 하는 숫자 자체가 무슨 마술이나 있는 것처럼
세상이 온통 난리를 치던 해의 2월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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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는데 벌써 3년이 지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제 저녁 후배들이 모여 나가라고 밀어내는(?)
성대한 환송회를 베풀어주어서 참석했더랬습니다.

끝나고 나서 행사를 주관하고 마무리했던 동료와 후배들 일부가
남아서 아쉬움에 뒤풀이를 했습니다.
한강 양화선착장에 있는 선유도의 환상적인 야경을 구경하고,
뼈다귀 해장국으로 요기를 하면서 못 다 나눈 이야기로
새벽까지 있다가 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졸업'이라고 하는 의미에 대해 새겨 보았습니다.
졸업은 떠남이면서, 새로운 곳으로 들어감도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OUT'은 항상 'IN'이라는 녀석을 품고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을 뿐입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의 떠나옴과 들어감의 연속'
이것이 인생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우리가 살면서 얼마나 많은 '떠남'을 하고 사는지 모릅니다.
떠남과 떠나옴은 항상 아쉬움을 남기고
들어감과 들어옴은 늘 새로운 기대감을 갖게 하지요.
그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은 '있을 때 잘하지!' 였습니다.
이번의 뒤늦은 공부를 마치면서 계산해보니 학교 공부만 꼭 20년 한 것 같은데,
또 느끼게 되는 것은 '좀 더 열심히 했더라면'입니다.
그러니 과거는 사람을 좀더 겸허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성경은 인생을 유목민의 입장에서 기술하고 있고,
또 나그네의 입장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끊임없이 말합니다.
왔다가, 떠나고, 가다가 멈추고, 잠시 쉬었다가 또 출발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많이 가진 사람에게는 아예 처음부터 출발이 무리입니다.
그러니 매여 있게 되고, 아울러 부자유함 속에서 살아가지요.
콤파스에 의해 그려지는 그 테두리 안에서만 그 속에서만 삽니다.

자유함은 그 매임을 풀어버리거나 잘라버릴 때 얻어지는 것이지요.
자유해져야 다시 돌아갈 수도, 계속 갈 수도 있는 선택권을 가집니다.
더없이 넓은 세상은 반드시 있습니다.
지금도 우주(물질적, 정신적, 영적)는 한없이 넓어지고 있습니다.


* 진정한 자유함은 참 진리가 주는 것이라 할 때
우리가 얻는 진리가 있을 때만이 우리가 자유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