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 사역 회복

용기와 자유함(치유)

장광호 2002. 11. 29. 17:00

 

지난번 27호의 글 "IN PUT"과 "OUT PUT"의 관계에서는
'토해냄'이 치유라는 저의 의견을 말씀드렸습니다.

치유된다함은 그를 얽어매는 것으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것이지요.
그런데, 토해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용기'와 '자유함'은 한 집안 식구라는 생각입니다.

기쁨도 토해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좋은 것이 있다면 자랑하지요.
적절한 자랑은 오히려 정신 건강에 좋다는 생각입니다.
지나친 겸손보다는 오히려 칭찬을 받을 줄 아는 것이 건강한 증거입니다.
만약 칭찬받을 만한 것도 칭찬으로 받지 못하면
그 속에 상처가 있거나 혹시 다른 교만이 자라는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병으로부터 치유함을 받고자 한다면 병균을 토해내야 합니다.
약으로든, 수술로든, 자신의 힘으로든, 기도로 하나님의 힘을 빌든.
억울함과 분함으로 상처를 받았으면 그것을 토해야 합니다.
자신의 엄밀한 죄로 인해 병이 되고 있다면 그것 역시 토해야 합니다.
다윗이 밧새바와의 나단 앞에서 간음 사실을 토해내었듯이.

그런데 토해내기 위해서는 '용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했습니다.
자신의 아픔을 밖으로 드러내는 결단의 용기가 필요하지요.
자신의 부끄러움을 토해낸다고 하는 것은 더 큰 결단을 요구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용기는 더욱더 필요합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덤비는 자가 이 세상에서 가장 자유한 자가 아닐까요?
죽기를 각오하고 나의 것을 토해낸다면 분명 치유가 일어나는데
그 속에서 얻는 자유함이 진정한 자유함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러한 결단의 용기가 일어나고 나아갈 때
분명 그를 얽매고 있는 것으로부터 자유함이 일어납니다.

'갈릴레이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지동설 주장을 철회하라는 중세의 강력한 압력에 서로 다른 태도를 취하지요.
한 사람은 '죽었으면 죽었지 철회하지 못한다'며 버티다 죽었고,
또 한 사람은 '하지 말라면 안 하지 뭐, 내가 철회한다 해서
지구가 안도는 것은 아니잖아'라고 해서 살았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건대 이 두 사람은 둘 다 다 용기 있는 사람이고,
그래서 두 사람은 다 자유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들이 소유한 자유함의 종류가 달랐을 뿐이라는 생각입니다.


* 토해냄은 솔직함, 정직함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그 사람을 살리는 힘이 됩니다.
솔직함, 정직함은 그 사람에게 자유함을 주고
토해내는 용기도 분명 그사람에게 자유함을 줄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이 다 통하는 것 아닌가 생각됩니다.

결국 '복음'도 땅속 깊이 있는 '지하수'와 같은 개념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지하수'와 '샘물'의 관계!
그 생수를 마시는 자의 자유함과 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