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함께 놀면 할일이 생깁니다.
은혜가 요즘 글씨를 배우려는가 봅니다.
아직 기역니은을 모르기 때문에 글자를 쓸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쓸 수 있는 글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무조건 펜을 잡으면 자신만의 글자를 씁니다.
며칠 전만 해도 직선을 꼬불꼬불 긋는 정도밖에
못했습니다.
하루는 상하로 길다란 선을 하나 긋더니 분수라고 했습니다.
이제 동그라미를 그리고 꼬불꼬불한 직선을 상하좌우로
연결합니다.
그러면서 꼬부랑 글씨를 써놓고 자기 마음대로 읽습니다.
그래서 잘 했다고 칭찬하면 신이나 하면서
계속합니다.
그러다가 은혜가 쓴 글씨를 낙서라고 무시할라치면
어떻게 내 마음을 알았는지 금방 상처를 받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꼬불꼬불한 선 4개를 그리더니 '은혜'라고 합니다.
이어서 동그라미와 선 몇 개가 붙은 그림을 그리더니
'0 0 0
전도사님'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분명 은혜가 쓴 글씨는 읽을 수 있는 글씨는
아니지만
무엇인가 글자의 형태를 갖추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또 손목과 손가락의 힘이 많이 자라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은혜는 자신이 아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단지 제가 보았을 때 그것이 글자가 아니었을
뿐입니다.
사람들과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의 문제도 이런 것이 아닐까요?
어떤 사람은 별 것 안 줬는데도 엄청난 감사와
기쁨으로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신경 써서 줬는데도 오히려 비난으로 갚습니다.
받는 사람이 이상하게도 엉뚱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 경우 준 사람이 잘못된 것인가요?
아니면 받는 사람이 잘못된 것인가요?
우리는 평소에 서로가 같은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의미를 서로가 다르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겪는 갈등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대개 건강한
사람은 긍정적으로 밝게 받는 것 같습니다.
상처를 갖고 있는 아픈 사람이 신경질적으로 받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상처를 하루빨리 치유하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에서 상처를 갖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다 치유의 대상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서로 가장 많은
상처를 주고받는 곳과 대상이
바로 자신의 가정이고 부모 자식간이고 또 부부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치유는 사람의
힘만으로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사람은 원래 사랑이 부족하거나 결핍된 존재이거든요.
* 이것이 제가 바로 가정 사역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유인데,
한 가정이 건강해지고 바로 서는 것이
바로 교회와 사회가 건강해지는 것이고
국가와 민족이 건강해지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