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야지요

하나님의 '광야 학교'에 예비된 세 가지 코스

장광호 2003. 6. 24. 21:11

요즘 출애굽기를 읽어가면서 앞으로 제가 가야할 길을 찾고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를 읽는 동안 모세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 보면서 그가 거친 <광야>를 묵상해보았습니다.

모세는 어느 날 졸지에 거대한 제국을 다스리는 왕이 될 뻔한 사람이 살인자가 되더니만
목숨을 부지키 위해 도망자가 되고 마침내 미디안 광야에서 양이나 치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고,
자신이 전혀 원하지 않았음에도 하나님께서 운영하는 '광야 학교' 신입생이 된 셈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이루기 위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 세 가지 코스를 거치게 됩니다.

첫째, <좌절의 강>을 건너는 일이었습니다.

이 강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의 인간적 한계를 인정해야만 하는 강이었습니다.
이 강은 인간적인 실수와 실패로 인한 극한의 좌절감 때문에 오는 죽음의 강이었습니다.
단지 육적 생명유지의 문제가 아닌 인간 삶의 질이란 고차원 문제를 풀어야 하는 강이었습니다.

그 강에 일단 들어가면 헤엄쳐 나올 힘이 없는 사람은 누구든 거기서 끝나고 마는 죽음의 강이지요.
반드시 헤엄쳐 나와야만 새로 거듭난 사람으로 되어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강입니다.
험난한 인생 길에서 생겼던 모든 인격의 손상이 회복될 때에야 비로소 건널 수 있는 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을 헤쳐 나올 수 있는 힘은 반드시 그 광야에서만 길러져야 하는 그런 힘이라야 합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보는 자연과 목자 생활, 오랜 세월의 흐름 속에서 얻은 이 힘을 통해,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방불한 절망의 상태를 오가는 <좌절의 강>을 건넜던 것이지요.

둘째는, <지혜의 산>에 올라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진짜 필요한 것은 인간적 지혜가 아닌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과 그 때'를 아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지혜의 산>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뜻과 때를 알게 하시기 위해 예비되어 있는 산입니다.

아무리 높아서 올라가기가 어렵다고 피해갈 수 없는 반드시 올라가야만 하는 산입니다.
광야의 첫 단계인 <좌절의 강>을 건너고 나서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산이지요.
이 지혜를 얻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가나안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는 40년의 세월을 보낸 후에야 비로소 <호렙산>에 올라 불타지 않은 가시덤불을 볼 수 있었지요.
그리고 그 곳에 가 보고서야 모세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을 알게 되었지요.

셋째, <결단의 길>을 찾고서야 광야에서 비로소 나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광야의 길을 가는 이유는 단 하나! 약속하신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함입니다.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지만 분명 쫓아내야 할 7족속이 확실하게 버티고 있는 곳이지요.
그렇다면 가나안은 그냥 주어지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쟁취해야할 땅이란 말이 됩니다.

이 곳에 올라가기 위해선 이제 오직 그 분의 뜻과 때에 따라 충성하며 싸우는 일만 남습니다.
지금까지 자신만 위해 산 인생길이 이제 '섬김, 봉사, 헌신'이라는 개념의 인생으로 바뀔 때 가능합니다.
이러한 인생의 길로 가는 길을 <결단의 길>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이 길은 지금까지의 우리의 생각과 사고가 이러한 패러다임으로 바뀌지 않을 땐
제 아무리 애쓰고 노력해도 결단코 보이지 않는 전혀 다른 길입니다.

그런데 그 <결단의 길>이라는 것이 결코 쉬운 길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한 인생의 절대적 희생이 필요하고, 때론 한 가족 전체의 헌신이 요구된다는 것 때문이지요.
아무리 <좌절의 강>을 건너고 <지혜의 산>을 올라 넘은 역전의 용사라 해도
이 길을 찾아 나오는 것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세 코스는 <광야 학교>에 들어가는 사람은 반드시 겪어야 하는 코스입니다.
그 광야에 들어간 사람들이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코스이고, 극복하고 나와야만 하는 코스입니다.
특히 본의든 아니든 인생의 후반에 이러한 길에 다시 뛰어든 사람은 더더욱 필수 코스이지요.

성경에 의하면 모세가 이 코스를 건너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마침내 입이 둔하고 혀가 뻣뻣한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 모세를 보면 하나님은 입이 둔하고 혀가 뻣뻣해진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가 입이 먼저 둔해지지 않으면 말이 늘 앞서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